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종교적 소수자 (문단 편집) == 과거의 종교적 소수자 사례 == 박해를 받아 전멸한 경우 & 다수파가 되거나 민족국가를 이루거나 차별이 사실상 근절된 경우 다 포함 * [[로마 제국]]의 [[밀라노 칙령]] 이전 기독교 * 이란의 [[시아파]] 순니파들과 섞여 살았으나 [[사파비 왕조]]의 성립 이후 쉬아파들이 사파비 왕조 영내로 이동하고 사파비 왕조 영내의 순니 무슬림들은 박해받고 쉬아파로 개종하거나 [[오스만 제국]], [[부하라 칸국]] 등으로 이주하면서 이란 기준으로는 다수파가 되었다. * [[신플라톤주의]] 로마 제국 말기 기독교의 대체 신앙으로 지식인들 사이에서 각광받았었다. * [[마니교]] [[위구르 제국]]과 [[고창회골]]에서 국교로 삼있던 역사 외에는 항상 종교적 소수파 입장이었고, 중세가 끝날 무렵 소멸해서 흔적만 남았다. *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의 주요 교파. 오스트리아 제국 시절에는 제대로 된 가톨릭이 아니라고 괴롭힘을 받았고, 소련 시절에는 폴란드 스파이라는 의심을 사서 극심한 박해를 당했으나, 소련 해체와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에는 [[르비우|리비우]] 주를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 서부의 주요 종파가 되었다. * [[조지아 정교회]] 사파비 왕조 시절 인구 대다수가 쉬아파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가, 러시아 제국의 정복 이후 다시 정교회로 개종했다. 조지아 정교회 성당의 상당수가 한 때 모스크로 개조되었다가 다시 정교회 성당으로 재개조된 경우가 많은데, [[트빌리시]]의 여러 정교회 성당들에 모스크 건축 양식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 [[러시아 정교회]]의 고의식파 17세기 중반의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 니콘의 전례 변경에 반발한 보수파 정교인들과 그 후손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결국 1971년부로 고의식파에 대한 파면을 모두 철회하고 이들을 복권시켰다. * [[러시아]]의 무슬림 [[타타르]]인과 [[바시키르인]] 기독교 국가 러시아의 종교적 소수자로 살아온 지 400~500년이 넘어서인지 타타르인 [[이리나 샤크]][* 원래 성은 셰이쿨이슬라모바 (Shaikh Al-Islam + 러시아어 여성 성 접미사 ova)로 이슬람 원로 학자 가문이라는 뜻이다. 다만 Irina라는 이름은 평화라는 뜻의 정교회식 이름]가 '''토플리스''' 화보도 잘만 찍는다던가,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당시 비무슬림 러시아인들 상당수가 설문조사에서 다른 기독교 유럽 국가들과 달리 테러범 입장이 이해가 간다고 응답[[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078958&code=61131611&cp=nv|출처]]하는 등 러시아 주류 사회와 상당한 수준의 상호 동화가 이루어졌다. 다만 이들과 이웃사촌 지간이었던 [[추바시인]]의 경우 빈곤과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정교회]]로 개종했다. 소련 시절 [[타타르스탄]] 대기근으로 1921년 50만 명에서 200만 명 정도의 무슬림과 [[독일계 러시아인]]이 목숨을 잃은 적이 있는데, 타타르인들은 이 대기근이 볼가 강 유역의 무슬림 민족과 정교회 대신 다른 종파를 믿는 독일계 기독교인들에 대한 조직적 학살로 간주하고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 [[https://fr.wikipedia.org/wiki/Soubbotniks|숩보트닉]](이른바 "안식파") 러시아 정교회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슬라브계 집단으로 러시아 제국 시절 이단 취급을 받았고 소련 내에서도 국가 무신론 정책 하에 탄압을 받아 동유럽 내에서는 거의 사멸하였으나 이스라엘로 이민한 사람들은 주로 노동시오니즘 키부츠의 도움으로 주류 사회에 편입되는데 성공하였다. 일부는 미국 LA로 이민하였으나, 다른 [[미국 유대인]]들에게 비유대인으로 취급받았던 데다가 경제적으로 극도로 빈곤한 경우가 많아 결혼 상대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오늘날에는 사실상 소멸한 집단이다. * [[보고밀파]] 보스니아 교회 보고밀파 신도들은 무슬림처럼 하루에 다섯 번 예배드리는 습관이 있었다 하며, 이는 보고밀파에 영향을 준 [[바오로파]] 신도들이 중세 초 잠시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이슬람 교리와 전례 일부를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보스니아 정복 이후 보고밀파 신도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했으며 무슬림 [[보스니아인]]인 [[보슈냐크인]]의 기원이 되었다. * [[모사라베]] 중세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왕국의 지배를 받던 기독교도 신민으로, 절대다수는 농촌에 거주하던 농노들이었으며 이슬람과 기독교를 동시에 믿는 이중 신앙 문화를 지녔었다.[*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4세가 [[톨레도]]를 함락시킬 당시 도시에 기독교인들이 없었다는 기록을 참고하면, 도회지에 거주하던 이베리아 원주민들은 무슬림으로 완전히 동화되었던 듯 하다.] 무슬림 통치자들의 성향에 따라 모사라베에 대한 차별이 완화될 때도 있었고, 박해가 더 심해질 때도 있었다. 기독교 탄압이 심해질 때마다 많은 모사라베들이 북부 기독교 국가로 이주하여, 중세 이슬람 선진 문물을 전해주면서 스페인 기독교도 왕국의 영토 회복 운동([[레콩키스타]])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 [[무데하르]] 중세 [[이베리아 반도]]에서 벌어진 [[레콩키스타]] 과정에서 기독교 국가에 거주하던 무슬림 신민. 이들은 [[세파르딤]] 유대인들보다는 처지가 나은 편이었는데, 레콩키스타 와중에 항복 과정에서 협상을 통해 안전을 보장받는 경우도 있었고,[* 물론 이 과정에서 이등시민 입장이던 유대인들의 처우 논의는 배제되었다.] 상인이 많았던 유대인들과 다르게 이베리아 무슬림 상당수가 농민으로 재산을 약탈하고 추방을 해봤자 오히려 기독교 왕국 측에 손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콩키스타가 완료되면서 이들에게도 기독교로 강제 개종이 이루어졌고, 기독교로 개종된 이후에도 모리스코(작은 무어인)이라는 멸칭으로 불리며 이등시민 취급을 받았다 한다. * [[모리스코 추방|모리스코]] * [[카타리파]] * [[바오로파]] * [[도나투스파]] *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 [[백련교]] * [[남수단]]의 기독교와 토속신앙을 믿는 여러 부족들 * [[조선의 천주교 박해|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